소문이 무성하던 iPhone SE 3세대의 후속 제품이 나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게 SE의 후속이 맞나? 네이밍도 바뀌고 가격도 비싸졌다. iPhone 16, iPhone 15보다 저렴하지만 ‘저가형’이라 부르기엔 너무 비싸다. 기존 SE 3세대는 429달러에 출시되었는데, iPhone 16e는 599달러로 나왔다.
도대체 이 폰은 뭘까?
원래 iPhone SE 라인업은 구형 모델을 재활용한 제품이었다. 구형 하드웨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칩셋 정도만 업그레이드하여 원가 절감을 한 것이다. 이와 달리 iPhone 16e는 재활용한 것처럼 생겼으나 사실상 ‘새로 만든’ 폰이다.
iPhone 16e의 외관은 iPhone 14와 거의 같다. 후면 카메라가 2개에서 1개로 줄고, 무음 스위치 대신 동작 버튼이 들어간 것만 눈에 띈다. 전면의 OLED 디스플레이는 크기, 해상도, 밝기가 같고, 심지어 다이내믹 아일랜드가 아닌 노치가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존 부품을 그대로 쓰며 원가 절감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내부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A18 칩이 들어간 게 다가 아니다. iPhone 16e는 iPhone 14의 내부 설계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구조를 개선했다. 단순한 재활용 제품이라면 내부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내부 구조가 개선된 덕에 배터리 용량이 커졌고, 일반 iPhone 16 모델보다 배터리가 오래간다. 그런데 사용 시간이 늘어난 데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 iPhone 16e에는 아이폰 최초로 애플이 직접 만든 5G 모뎀이 들어갔다. 애플이 ‘C1’으로 부르는 이 모뎀은 기존 아이폰에 들어가던 퀄컴의 모뎀보다 전력 효율이 좋다.
원래 애플이 쓰던 퀄컴 모뎀은 전력 효율이 좋지 않아 애플의 고민이었다. 그래서 애플이 모뎀을 직접 만들려 했으나 성능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애플은 2019년에 인텔의 스마트폰 모뎀 사업부를 인수했다. 그리고 2025년, 처음으로 애플이 직접 만든 모뎀이 들어간 것이다.
전력 효율이 좋은 모뎀이라니, 환영할 일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C1 모뎀은 다른 아이폰에 들어간 모뎀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다. 일부 5G 규격과 대역폭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 별로 없어서 현실적으로 체감되진 않겠지만, 부족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으로 애플이 만든 모뎀을 넣었으니 그럴 수 있지!’ 하고 이 문제는 넘어가더라도 와이파이 사양을 보면 애플의 꼼수에 또 놀란다. iPhone 16e는 Wi-Fi 7가 아닌 Wi-Fi 6만 지원한다. 모든 iPhone 16 모델에는 Wi-Fi 7이 탑재되었는데 16e에서는 그마저도 뺀 것이다. 사실 이 차이도 일상적으로 체감하기 어렵긴 하다. 애플다운 교묘함이다. 굳이 따져 보면 체감하기 어려운 데에서 원가 절감을 했다.
iPhone 16e에서 빠진 무선 기술은 이게 끝이 아니다. 초광대역 칩(U1, U2), Thread 네트워킹 기술도 빠졌다. 초광대역 칩은 iPhone 11 시리즈부터 들어갔던 부품인데 ‘16e’에서 빼 버린 것이다. 초광대역 칩이 있으면 에어팟이나 다른 아이폰 같은 기기의 위치를 정확하게 추적하여 찾을 수 있는데, 그 기능은 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Thread 네트워킹 기술은 IoT 기기를 사용할 때 기기들이 상호 연결되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도 실제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iPhone 16e에서 제외되었다.
별로 유용하지 않지만 애플이 꾸준히 밀고 있는 Apple Intelligence를 구동하기 위해 iPhone 16e에는 A18 칩이 탑재되었다. A18이긴 한데 GPU 코어가 하나 비활성화되었다. 그래서 일반 iPhone 16 모델보다 그래픽 성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카메라를 살펴보자. 48MP Fusion 카메라가 들어갔다. 카메라는 하나뿐이고 광각이나 망원 카메라는 없다. 그래도 메인 카메라가 48MP여서 2배 확대를 해도 12MP 사진을 찍을 수 있다. iPhone SE 4세대(iPhone 16e)에 대한 루머가 돌 때부터 카메라는 하나만 탑재될 것이라 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꽤 좋은 카메라를 넣어 준 셈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여러 기능을 뺐다는 것이다.
iPhone 16e는 iPhone 16 시리즈 카메라의 가장 큰 업그레이드였던 최신 세대 사진 스타일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최신 세대 사진 스타일 기능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사진의 톤과 채도를 조절하여 사후 보정 없이도 원하는 색감을 내게 해 준다. 안타깝게도 iPhone 16e에서는 그 기능을 쓸 수 없다.
영상 면에서도 빠진 기능이 있다. iPhone 16e는 시네마틱 모드와 액션 모드를 지원하지 않는다. 시네마틱 모드는 인물 사진 모드처럼 피사체를 제외한 배경을 흐리게 하는 기능이고, 액션 모드는 아이폰을 손으로 들고 촬영할 때 흔들림을 최소화해 주는 기능이다. (물론 iPhone 16e에 아예 흔들림 방지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iPhone 16e에는 카메라 컨트롤 버튼도 없다. 카메라 컨트롤은 빠르게 카메라를 실행하고 촬영할 때 쓰는 버튼이다. 이 버튼은 안 쓴다는 사람도 많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아예 선택지가 없다는 건 아쉽다. 카메라 컨트롤을 길게 누르면 Apple Intelligence 기능 중 하나인 Visual Intelligence가 실행되는데, iPhone 16e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없고 동작 버튼에 그 기능을 할당해야 한다.
앞서 iPhone 16e에는 노치가 있다고 했다. 노치는 iPhone 14 Pro에서 처음 다이내믹 아일랜드로 대체되었고, iPhone 15부터 모든 모델에서 노치가 사라졌다. iPhone 16e는 iPhone 14를 ‘재활용’한 모델이어서 그런지 노치가 있다. 그런데 전면 디스플레이에 일반 iPhone 16과 차이가 하나 더 있다. iPhone 16 시리즈에는 최신 세대 Cermic Shield가 적용되었지만, iPhone 16e의 전면은 이전 세대 Cermic Shield이다.
iPhone 16e에서 정말 많은 게 빠졌지만 맥세이프를 뺀 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다. iPhone 12 시리즈부터 도입되어 이제는 맥세이프를 지원하는 액세서리도 다양하게 출시되었다.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맥세이프 케이스를 껴서 맥세이프 액세서리를 쓸 정도인데, iPhone 16e에는 맥세이프가 없다. 맥세이프 부착 액세서리를 쓸 수 없고, 고속 무선 충전도 안 된다. 정말 치사하다.
그렇다면 iPhone 16e는 누구를 위한 제품일까?
Apple Intelligence를 사용할 수 있는 아이폰 중에 가장 저렴하긴 하지만 빠진 기능이 너무 많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빠진 기능들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아 보인다.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배터리 성능이 향상된 것이 일상적으로는 유용하다.
iPhone 16e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첫째, 현재로서는 돈을 조금 더 주고 iPhone 15를 사는 게 차라리 낫다. 그러면 다이내믹 아일랜드, 광각 카메라, 초광대역 칩, 맥세이프 등 더 많은 기능을 누릴 수 있다. 단 Apple Intelligence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차피 Apple Intelligence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재미 삼아 몇 번 써 볼 정도는 되지만 일상적으로 계속 쓸 정도는 아니다.
두 번째 관점은 미래와 가능성을 포함한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거쳐 Apple Intelligence가 유용해진다면 iPhone 16e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Apple Intelligence가 개선되고 발전할 것임은 확실하다. 얼마나 좋아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쓸 만해진 Apple Intelligence를 사용하고 싶다면 가장 저렴한 선택지는 iPhone 16e다.
이쯤 되니 애플이 뭔가 큰 걸 준비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Apple Intelligence의 미래에 자신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플이 이렇게 이상한 폰을 만든 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무튼 iPhone 16e는 정말 이상한 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