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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s

프렌즈와 함께 표준국어대사전 2023년 신규 표제어 둘러보기

※ 이 글은 원래 네이버 블로그에 게시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국립 국어원에서 발행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계속 새로운 표제어가 추가된다. 2023년에는 무려 1,000개나 되는 낱말이 새로 등재되었고, 기존 표제어의 뜻풀이도 많이 수정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욕을 많이 먹고 어이없는 점도 많은데 좋든 싫든 여기에 맞춰야 해서 일할 땐 항상 켜 둔다. 그래도 나는 규범 지향적 인간이라 확실한 기준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 좋다.

2023년에는 10월 24일과 12월 27일에 각각 500개씩 표제어가 추가되었는데, 총 1,000개 단어를 내 나름으로 분류한 뒤 그중에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만 몇 개 골라 보았다. 그냥 얘기하면 의미 없으니까 관련된 『프렌즈(Friends)』 이야기까지 곁들였다. 이 글에서는 크게 음식, 성, 동물, 기술과 관련된 단어를 다루었다.

 

포테토칩 중독자인 나에게 12월 27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감자칩’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날이기 때문이다.

 

감자-칩(감자chip)

「명사」

얇게 썬 감자를 기름에 튀긴 음식.

  • 맥주 안주로 감자칩이 제격이다.
     
    시즌 7 3화

『프렌즈』에서 감자칩이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시즌 7 3화다. 경매에서 보트를 산 조이가 드디어 편히 쉬면서 감자칩 먹을 곳이 생겼다고 말하며 모니카 집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먹는다.

 

그런데 예문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맥주 안주로는 감자튀김이 낫기 때문이다. 감자튀김은 원래 이 사전에 있었다.

 

감자-튀김

「명사」

감자를 썰어서 기름에 튀겨 낸 음식.

  •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시켜 먹었다.

정말 성의 없는 예문이다. 『프렌즈』에 사전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세 개(4–3, 9–9, 9–18) 정도 있는데, 그중 시즌 9 18화에서 레이철이 억지스러운 예문을 만든다. 에마가 첫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시기에 에마가 ‘gleba’라는 소리를 낸다. 레이철은 그 소리를 듣고 에마가 처음으로 말을 했다며 기뻐한다. 그러자 로스는 비아냥거리며 레이철에게 gleba를 활용한 문장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레이철은 “Emma just said gleba.”라는 엉터리 문장을 만든다. 감자칩과 감자튀김의 예문도 거의 이 수준이다. 웃음거리…

 

 
시즌 9 18화

감자 얘기를 하는 김에 말하자면 ‘알감자’도 이번에 추가되었다.

 

알-감자

「명사」

한입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작고 동그란 감자.

  • 탱글탱글한 알감자.
  • 어느 휴게소에서나 버터에 구운 알감자를 판다.

 

내 분류에 따르면 2023년에 추가된 표제어 중 음식에 관한 단어는 68개다. 이것에 관해 찝찝한 점이 있는데, 그건 뒤에서 다루겠다.

간편식, 감자칩, 급수대, 기호식품, 김장배추, 껌값, 농축액, 다과상, 닭강정, 닭꼬치, 대통밥, 도가니탕, 도시락통, 돌솥밥, 둥굴레차, 롤케이크, 막창, 매실청, 맥아엿, 메추리알, 목심, 밀면, 발효 식품, 발효액, 배식되다, 배식판, 보양식, 보양탕, 빵칼, 산낙지, 살처분, 살처분되다, 살처분하다, 생면, 생선구이, 생신상, 샤부샤부, 센불, 수리떡, 수산시장, 수타, 숯불구이, 슬러시, 시리얼, 시음대, 식감, 식재료, 쌍화차, 알감자, 압력밥솥, 앞접시, 약불, 양념갈비, 양념통, 어판장, 연육, 연육하다, 영양밥, 자장, 절밥, 조미김, 집간장, 짜장, 춘장, 캔맥주, 콩고기, 팥빙수, 활어회

 

케이크 동아리 회원으로서 ‘롤케이크’도 소개한다.

 

롤-케이크(▼roll cake)

「명사」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아서 만든 케이크.

  • 딸기가 들어간 롤케이크.
  • 길쭉한 롤케이크를 칼로 잘라서 나누어 먹었다.

 

『프렌즈』에는 롤케이크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케이크는 자주 등장한다. 피비 깜짝 생일 파티 때 로스가 케이크를 떨어뜨리고(시즌 1 17화), 로스는 새로 이사한 건물의 관리자 퇴임 파티에서 케이크를 먹어 원성을 사며(시즌 5 15화), 레이철과 챈들러는 챈들러 집으로 잘못 배달된 치즈케이크를 몰래 먹는다(시즌 7 11화). 에마의 첫 생일(시즌 10 4화)에는 뉴저지에 있는 빵집에서 주문 제작을 한 케이크가 잘못되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시즌 7 11화에서는 치즈케이크가 맛있다는 점이 강조되어 이 에피소드를 볼 때마다 치즈케이크를 너무 먹고 싶다.

시즌 7 11화

 

밥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돌솥밥’도 소개한다.

 

돌솥-밥

「명사」

돌솥에 지은 밥.

  • 돌솥밥이 나오자마자 재빨리 밥을 양푼에 덜고 돌솥에는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었다.

『프렌즈』에 돌솥밥은 나오지 않는다.

 

성과 관련된 단어는 7개 정도밖에 추가되지 않았다.

남주인공, 발레리노, 색기, 성소수자, 연애사, 저출산, 커밍아웃

10월에는 ‘성 소수자’가 드디어 등재되었다. 이걸 띄어 쓸지 붙여 쓸지 애매했는데 이제 확실해졌다. 띄어 쓰는 게 원칙이고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합성어가 아니다.

 

성^소수자

『사회 일반』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지니고 있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

(*예문 없음)

 

웃기는 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표제어가 아니라는 거다. 중요한 단어를 등재하지 않은 것도 문제고 사전에 없는 단어를 풀이에 쓰는 것도 문제다. 그러면 이 사전만 두고 한국어를 새로 배우는 사람이 ‘성 소수자’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성 소수자가 추가되었다는 것과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구별해서 적었다는 데 의의를 둔다.

 

『프렌즈』에서는 성 소수자를 너무 희화화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요즘 한국 드라마보다 훨씬 더 성 소수자에 열린 모습을 보여 준다. 성 소수자 등장인물 하나를 꼽자면 챈들러의 아버지가 있는데, 정상성에서 벗어난 부성애를 묘사해 의미 있는 것 같다. 나는 챈들러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는 에피소드(시즌 7 22화)를 좋아한다. 이 에피소드는 감동적이고, 매슈 페리(Matthew Perry)의 진지한 연기가 돋보인다. 

시즌 7 22화

시즌 7 22화

 

성 소수자에 이어 ‘커밍아웃’도 12월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었다.

 

커밍-아웃(coming-out)

「명사」

자신의 사상이나 정체성 따위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

  • 커밍아웃을 하다.
  • 사회적 시선이 무서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있다.

 

‘커밍아웃’을 성과 관련된 것으로만 두지 않고 넓게 정의했다. ‘커밍아웃하다’라는 동사는 사전에 없고, 예문처럼 ‘커밍아웃을 하다.’라고 써야 좋을 듯하다.

 

『프렌즈』 시즌 2 4화에는 피비와 혼인 신고를 한 게이 아이스 댄서 덩컨(Duncan)이 나온다. 덩컨은 원래 자신이 게이인 줄 알았고,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 피비와 혼인 신고를 했다. 사실 피비는 덩컨을 좋아했지만 그 마음을 숨겼다. 이후 덩컨은 피비를 찾아와 이혼을 부탁한다. 덩컨은 자신이 알고 보니 이성애자였고 결혼할 여자가 있다며 피비에게 이혼해 달라고 한다. 덩컨이 피비에게 (사실 이성애자라고)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이 신에서는 일반적 커밍아웃의 클리셰를 덩컨의 커밍아웃에 적용해 코미디를 구성한다.

시즌 2 4화

일반적 갈등이나 행위 등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나 틀을 다른 경우에 적용하여 관객을 웃기는 것은 『프렌즈』에서 자주 활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모니카가 레이철 몰래 줄리와 쇼핑을 했다가 들켜서 레이철에게 사과할 때(시즌 2 2화)는 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신의 애인에게 사과하는 대표적 변명(‘그 사람과 있을 때도 계속 널 생각했다.’, ‘딱 한 번만 그런 거다.’ 하는)을 활용했다. 또 다른 예로 조이가 병아리를 들였을 때(시즌 3 21화), 조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혼자 병아리를 돌본 챈들러가 조이에게 화내는 신에서는 독박 육아에 지친 사람이 배우자와 다툴 때 나오는 대표적 표현(‘병아리를 돌보는 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같은)을 활용했다. 이 외에도 시즌 1 22화, 시즌 5 21화 등에서 이런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성 소수자’가 추가된 것보다 ‘남주인공’이 추가된 게 더 놀랍다. 원래 이 사전에 ‘여주인공’은 있었으나 ‘남주인공’은 없었다.

 

남-주인공(男主人公)

「명사」

연극, 영화, 소설 따위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남자.

  • 영웅 소설의 남주인공은 대개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 일일 드라마의 남주인공으로 신인 배우가 캐스팅됐다.
  • 이 영화는 액션 전문 배우가 남주인공을 맡았다.

「반대말」 여주인공(女主人公)

 

특정 단어 앞에 ‘여’를 붙이는 경우는 많지만 ‘남’을 붙이는 경우는 적다. 남성을 기본으로 두고 여성에게는 설명을 덧붙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남주인공처럼 이분법적 성을 특정하는 말을 아예 쓰지 않고 주인공이라고만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꼭 필요하다면 여자 주인공만 여주인공으로 부르지 말고 남자 주인공도 남주인공으로 부르는 게 낫다. 그래서 이번에 ‘남주인공’이 등재된 것은 환영할 만하다.

 

『프렌즈』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은 이 글에 정리해 두었다.

 

 

찝찝한 게 하나 더 있다. ‘저출산’은 추가되었는데 ‘저출생’은 추가되지 않았다.

 

저-출산(低出産)

「명사」

『사회 일반』 사회 전체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음. 또는 그런 상태. 일반적으로 출산율이 2.1명 미만인 경우를 가리킨다.

  • 최근 저출산으로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다.

『프렌즈』에는 아이를 낳는 신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리스트만 소개한다.

  • 시즌 1 23화
  • 시즌 5 3화
  • 시즌 8 23, 24화
  • 시즌 10 17화

동물과 관련된 단어도 대거 추가되었다. 내 분류를 기준으로 동물과 관련된 단어는 45개다.

감시견, 개다리춤, 개줄, 닭강정, 닭꼬치, 도가니탕, 동물병원, 돼지코, 막창, 메추리알, 목심, 문어발식, 반려견, 반려묘, 보양식, 보양탕, 사육사, 산낙지, 살처분, 살처분되다, 살처분하다, 생물종, 생선구이, 샤부샤부, 서식처, 세발낙지, 수산시장, 수색견, 숯불구이, 승마장, 식재료, 양념갈비, 어판장, 여우짓, 연육, 연육하다, 유기견, 유기묘, 자연교배, 조개무덤, 집게다리, 콩고기, 합사, 합사하다, 활어회

(위에서 언급한) 찝찝한 점은 동물로 추가된 단어 중 ‘고기로서의 동물’이 드러나는 단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분류한 대로 보면 이런 단어는 총 24개다.

닭강정, 닭꼬치, 도가니탕, 막창, 메추리알, 목심, 보양식, 보양탕, 산낙지, 살처분, 살처분되다, 살처분하다, 생선구이, 샤부샤부, 수산시장, 숯불구이, 식재료, 양념갈비, 어판장, 연육, 연육하다, 콩고기, 활어회

달리 말하면 신규 표제어에서 음식과 관련된 단어의 약 35.29%가 고기로서의 동물이며, 동물과 관련된 단어의 약 53.3%가 고기로서의 동물인 셈이다. 물론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니 사전에 등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동물과 관련된 단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기’라는 것은 충격적이다. (‘콩고기’가 애매하지만 ‘고기’가 들어간 단어이므로 고기로서의 동물에 관한 단어로 분류하였다)

『프렌즈』에는 동물이 많이 나온다. 로스는 초반에 원숭이 마셀(Marcel, 시즌 1 10화에 처음 등장)을 키웠고, 챈들러와 조이는 병아리(Chick, 이후 수탉이 된다. 성체가 되어서도 Chick이라 불린다)와 오리(Duck)를 들였다(시즌 3 21화). 마셀과 병아리, 오리는 비중이 꽤 커서 아예 에피소드 제목도 「The One with the Monkey」, 「The One With a Chick and a Duck」이다.

시즌 1 10화
 

레이철은 어렸을 적부터 키우고 싶어 한 스핑크스 고양이(위스커슨 부인, Mrs. Whiskerson, 시즌 5 21화)를 들였다가 바로 파양했다. 상심한 조이를 위로하려 피비는 친구의 개(모차렐라, Mozzarella, 시즌 8 15화)를 데려오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덩컨이 처음 등장할 때, 로스가 자신의 샌드위치를 마음대로 먹고 버린 상사에게 화낼 때(시즌 5 9화), 다 같이 사 모은 복권을 담은 그릇을 피비가 떨어뜨릴 때(시즌 9 18화)는 비둘기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 외에도 정말 수없이 동물이 나온다.

 

그런데 겔러 가족이 예전에 키우던 개 ‘치치(Chichi)’와 관련해 설정 오류가 하나 있다. 초반 시즌에서 로스는 치치가 죽지 않았고 부모님이 치치를 ‘농장’에 보냈다고 믿었다(시즌 1 3화). 친구들은 그런 로스를 불쌍해하며 한심하게 바라본다. 이때 조이도 ‘당연히 죽은 거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시즌 후반에서 조이는 닭과 오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챈들러가 닭과 오리를 ‘농장’에 보낸 것이라고 믿는다(시즌 10 17화). 이 오류는 후반 시즌으로 갈수록 멍청해지는 조이 때문에 발생한 오류 중 하나다. 비슷한 경우로 손가락으로 따옴표를 그리는 air quotes에 관한 에피소드(시즌 9 2화)가 있다. 후반 시즌에서 조이는 사람들이 그런 손짓을 하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실 이전 시즌에서 조이는 숱하게 그 손짓을 했다.

시즌 1 3화 (조이가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았던 시절)

이런 식의 오류가 『프렌즈』에 너무 많아서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너무 심한 게 하나 있다. 챈들러가 사진을 찍을 땐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지 못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삼은 에피소드(시즌 7 5화)다. 나중에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일회용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땐 챈들러가 너무 잘 웃는다(시즌 8 2화). 이렇게 심한 오류를 감수하면서까지 넣을 만큼 웃기진 않는데 정말 소재가 부족했나 보다.

 

다음으로는 기술과 관련된 단어다. 내가 분류한 바로는 총 72개인데, 주로 인터넷, 컴퓨터, 자동차와 관련이 있다.

가스차, 개발품, 검색기, 검색대, 게임장, 결제창, 경고음, 경량화, 경량화하다, 경유차, 공기 조절기, 공업사, 공조기, 급발진, 덮어쓰기, 데이터베이스화하다, 두벌식, 드라이기, 디자인되다, 로그아웃되다, 로그아웃하다, 로그인되다, 로그인하다, 리콜되다, 리콜하다, 만차, 바탕화면, 방지턱, 배속, 부팅하다. 세벌식. 수소차, 순정품, 시공사, 신문물, 신호음, 안개등, 안전문, 알림, 알림창, 압력밥솥, 애플리케이션, 앱, 야광봉, 양문형, 예고음, 원유, 월납, 월정액, 웹브라우저, 웹사이트, 웹서버, 웹페이지, 유에스비, 자료화, 자료화하다, 저화질, 전기차, 제습기, 제조사, 주차선, 차고, 차고지, 착신자, 출력되다, 카레이서, 콜센터, 킥보드, 탑차, 포털, 헤드셋, 휘발유차

혹시나 하고 ‘급발진’의 풀이를 봤는데 유행어로서 지니는 의미는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급-발진(急發進)

「명사」

주로 자동차가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빠르게 돌진함. 또는 그런 일.

  • 급발진 때문으로 의심되는 자동차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네이버 『웹소설 작가 용어사전』에는 이런 풀이도 나온다.

“캐릭터의 감정선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갑자기 변화할 때 쓰는 말.”

 

‘바탕화면’도 재미있다. 그런데 풀이가 영 만족스럽지 않다.

 

바탕-화면(바탕畵面)

「명사」

『정보·통신』 컴퓨터를 켜면 기본으로 제공되는 화면.

  • 가족사진으로 바탕화면의 배경을 바꾸었다.
  • 바탕화면에 자주 사용하는 단축 아이콘을 깔아 두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화면이라는 의미로는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저 풀이대로라면 차라리 로그인 창을 바탕화면이라 해야 한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화면은 한두 개가 아니다.

 

‘저화질’도 추가되었다.

 

저-화질(低畫質)

「명사」

텔레비전, 컴퓨터 따위의 화면이 구현하는 색상과 명도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

  •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이 저화질이라서 사고 차량의 번호가 보이지 않는다.
  •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이 저화질로 나왔다.

「반대말」 고화질(高畫質)

 

‘고화질’은 이미 등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2023년 9월에 뜻풀이가 약간 수정되었다. 원래 풀이는 “텔레비전 따위의 화면이나 그림의 바탕이 아주 섬세하고 선명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텔레비전, 컴퓨터 따위의 화면이 구현하는 색상과 명도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런데 ‘화질’을 ‘색상과 명도의 품질’만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다못해 색상과 명도의 품질이 같지만 해상도가 다른 경우에도 해상도가 낮은 디스플레이가 ‘저화질’로 분류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예문이다. 뜻풀이에서는 분명 ‘화면이 구현하는 색상과 명도의 품질’이라고 규정했는데, 블랙박스에 기록된 영상이 저화질이라고 하면 화면이 아니라 블랙박스 카메라의 화질이 부족한 것이다. 두 번째 예문도 마찬가지다. 화면이 아니라 카메라의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즉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이미지 센서, 렌즈, ISP 등의 문제다.

 

『프렌즈』가 썩 화질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FHD(1920*1080)로 볼 수 있는 것은 『프렌즈』를 필름으로 촬영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프렌즈』도 4:3 비율로 방영되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16:9 비율에 FHD 해상도로 필름을 다시 스캔하였다. 원래 4:3으로 방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촬영해서 그런지 16:9 버전에는 문제가 좀 있다. 4:3 버전에서는 나오지 않던 좌우 가장자리가 드러나면서 대화 신이 어색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스가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챈들러가 그 말을 듣고 짓는 표정을 보여 주는 경우, 바로 전 컷에서 로스가 말을 끝냈지만 챈들러 얼굴을 보여 주는 다음 컷에서 로스가 여전히 말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 식이다. 4:3 버전에서는 로스가 보이지 않으니 문제없지만, 16:9 버전에서는 로스가 계속 말하는 게 보이니 완성도가 떨어진다.

 

‘유에스비’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썼는지 모르겠다.

 

유에스비(USB)

「명사」

『정보·통신』 플래시 메모리를 이용한 이동형 데이터 기억 장치. 컴퓨터의 포트에 꽂아서 쓴다.

  • 유에스비에 발표할 내용을 저장해 두었다.
  • 우리 회사에서는 보안 정책 때문에 유에스비를 등록한 후에 사용해야 한다.

어원: universal serial bus

 

원래 뜻은 쓰지도 않고 ‘USB 메모리’로서의 뜻만 써 두었다. 왜 일을 하다 말았는지…

 

문득 『프렌즈』를 방영할 때 USB가 있었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USB를 개발하기 시작한 때는 1994년이었다. 『프렌즈』는 1994년부터 방영된 프로그램이므로 따져 보면 USB보다 나이가 많다. USB 1.0은 1995년에 나왔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USB 0.7과 0.8만 개발되었다. 그리고 1996년이 되어서야 USB가 상용화되었으니 『프렌즈』가 정말 오래되긴 했다.

 

‘킥보드’가 추가된 걸 보면 킥보드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은 것 같다. 나도 전에는 킥보드를 자주 탔는데 한 친구가 나에게 킥보드를 타다 죽으면 장례식에 오지 않겠다고 해서 그 이후에는 타지 않는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사고가 날 뻔한 경험도 있다. 아무튼 ‘킥보드’의 뜻풀이도 영 만족스럽지 않다.

 

킥-보드(kick-board)

「명사」

긴 손잡이가 있고, 바닥에 2~4개의 작은 바퀴가 달린 보드. 주로 어린이들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발로 바닥을 밀면서 탄다. 성인들은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 킥보드를 타다.
  • 킥보드를 타려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어린이들이’나 ‘성인들은’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심지어 저 뜻풀이에서 이 단어들만 빼도 말이 된다.

 

긴 손잡이가 있고, 바닥에 2~4개의 작은 바퀴가 달린 보드. 주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에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발로 바닥을 밀면서 탄다.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어의 기본이 되는 사전에서 부적절한 나이주의와 정상성 개념이 드러나는 것이다. 불필요한 단어를 넣었다고 본다. 사전이 지니는 공동체적 의미를 고려하면 뜻풀이에 도덕적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이렇게 차별적인 뜻풀이를 2023년에 당당히 실은 국립 국어원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시즌 7 14화

『프렌즈』에서 킥보드가 가장 두드러지는 에피소드는 시즌 7 14화이다. 레이철이 생일 선물로 받은 스쿠터를 조이가 타다가 다친다. 이 에피소드에서 레이철은 태그에게 이별을 고하는데, 그 이유가 정말 구시대적이다. 레이철은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태그와 헤어졌다. 『프렌즈』를 볼 때면 이런 지점에서 세대 차이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주제와 관계없이 흥미로웠던 단어를 몇 개 정리해 보았다.

 

석-박사(碩博士)

「명사」

석사와 박사를 아울러 이르는 말.

  • 나는 석박사를 같은 학교에서 마쳤다.

이제 ‘석·박사 통합 과정’이 아니라 ‘석박사 통합 과정’이라 해야겠다.

 

몸-고생(몸苦生)

「명사」

어렵고 고된 일이나 생활 때문에 육체적으로 겪는 고생.

  • 유 씨는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피골이 상접한 참담한 촌부가 돼서 돌아왔다. ≪유주현, 대한 제국≫
  • 기실 기동하고 밥 짓고 빨래하는 일에는 아무런 몸고생을 느끼지도 않는 터였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원래 이 사전에 ‘마음고생’은 있었는데 ‘몸고생’은 없었다. 그래서 ‘몸 고생’으로 띄어 써야 했는데 이제 ‘몸고생’으로 붙여 써야 한다. 유심론자(唯心論者)가 아니라면 마음고생뿐만 아니라 몸고생도 있다고 여길 것이다.

 

라섹(LASEK)

「명사」

『의학』 시력을 교정하는 수술 방법의 하나. 각막의 상피를 분리하여 옆으로 접어 두고 레이저로 각막을 얇게 만든 후, 분리해 둔 각막의 상피를 본래의 자리로 복구하여 시력을 교정한다.

어원: Laser Assisted Sub-Epithelial Keratomileusis

 

라식은 있었는데 라섹은 없었다.

 

날-궂이

「명사」

「1」 궂은 날씨에, 쓸데없는 일이나 행동을 함.

  • 그는 비나 눈이 오는 날마다 마당에 나가 옷을 벗고 뛰어다니며 날궂이를 하였다.
  • 그 후 미륵례의 어머니가 간혹 날궂이를 하느라고, 마당가에 나와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악을 써 대는 것 외엔 별로 시끄러운 일이…. ≪한승원, 폐촌≫

「2」 날이 궂기 전에 몸이 아프거나 쑤시는 등의 증상이 나타남.

  • 할머니께서는 비가 오려는지 날궂이를 한다며 연신 무릎을 주무르셨다.

「3」 궂은 날씨에, 음식을 장만하여 서로 나누어 먹거나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냄.

  •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 집에 모여 전을 부치며 날궂이를 하곤 했다.

예쁜 단어다.

 

다이어트-하다(diet하다)

「동사」

살을 빼기 위해 먹는 양을 줄이거나 먹는 종류를 조절하다.

  • 다이어트하는 동안 라면, 치킨을 멀리하느라 힘들었다.
시즌 2 7화

 

 

먹는 것만 언급하고 운동은 언급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도 다이어트에 포함하므로 이런 측면도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챈들러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에피소드(시즌 2 7화)에서는 식단은 나오지 않고 운동하는 모습만 나온다.

 

물-풍선(물風船)

「명사」

안에 물을 넣어 부풀린 풍선.

  • 물풍선을 던지다.
  • 물풍선을 터뜨리다.
  • 축제를 준비하며 물풍선을 옮기던 중에 물풍선이 터져 옷이 다 젖었다.
시즌 6 24화

 

 

나는 『프렌즈』에서 엘리자베스가 물풍선 싸움을 하는 에피소드(시즌 6 24화)를 좋아한다. 장난을 멈추라고 화내는 로스가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Everybody put their balloons down!”

 

칼-같다

「형용사」

행동이나 태도 따위가 단호하고 정확하다.

  • 그녀는 음식에 있어서 좋고 싫음이 칼같다.
  • 그의 칼같은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 여럿이 상처받았다.

 

전에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해도 ‘칼 같다’라고 띄어 써야 했는데, 이제 그 의미로 쓸 땐 붙여 써야겠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 칼과 비슷함을 나타낼 땐 띄어 써야 한다.

 

무-개념(無槪念)

「명사」

어떤 일이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없어 제멋대로인 것.

  •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무개념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이해가 없어’는 다소 편협한 설명이다. 무개념은 도덕성과 관련된 개념인데, 도덕성이 이해만으로 굴러가진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 이해 없이 생물학적 직관만으로도 인간은 개념 있는 행위를 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의식적 이해가 있어도 인간은 얼마든지 개념 없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따로 언급하진 않은 범주에서는 가족, 부동산, 의료와 관련된 표제어가 많이 추가되었다. 군(軍), 다문화에 관련된 신규 표제어도 많다. 정말 많이 쓰는 단어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경우가 많아 흥미롭다. 2024년에는 5천 개쯤 추가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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