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화편 시리즈에서는 AI와 함께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답을 바로 제시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답(혹은 새로운 질문)을 찾아 나간다.
운전을 하다 보면 반드시 부당한 상황에 처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변경해 부딪힐 뻔하거나 머리를 들이밀고 무작정 끼어드는 일 등, ‘화가 나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운전자들이 욕을 많이 한다. 운전 중 부당 행위는 안전, 생명과도 직결되므로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부당하지만 불법은 아닌’ 경우 우리는 상대 운전자에게 경고하거나 보복할 방법이 없다. 애초에 도로에서 운전자들이 서로 소통할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다. 깜빡이, 상향등, 경적 정도로만 소통할 수 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거나 무작정 상대 차를 막아서기도 한다. 하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며, 상식을 벗어난다.
그리고 ‘분노를 표출할 방법’으로 좁히면 사실상 경적이 유일하다. 경적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므로 경적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때 경적을 경고로도 보복으로도 쓸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교육’이 되기도 한다. 부당 운전을 일삼는 사람은 경적 소리를 듣는 불쾌한 경험(처벌)을 피하려 할 것이므로 불쾌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부당 운전을 덜 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부당 행위에 대한 대응으로서 경적은 ‘보복’의 수단이다. 의식적으로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나는 교육하는 거야’라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보복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해 경적을 울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부당한 행위’에 보복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특히 운전할 때처럼 즉각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는 ‘추론’보다는 '직관’에 의존한다. (추론은 나중에 직관에 따른 판단을 정당화하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 느끼며, 그것에 보복하려는 욕구가 발생한다.
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가 제시한 도덕성 기반 이론(MFT)에 따라 생각해 보면 부당 운전 행위는 주로 ‘배려/피해’ 기반과 ‘공정성/부정’ 기반을 자극할 것이다. 부당 운전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다른 운전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덕성 기반이 자극되면 피해 운전자는 부당 운전자의 행위가 비도덕적이라고 판단한다.
요컨대 인간 운전자는 부당 운전을 직관적으로 ‘비도덕적 행위’, ‘부당 행위’라고 판단하고 분노한다. 이렇게 도덕감이 자극되면 인간은 보복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거의 유일한 보복 수단이 경적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노와 보복 욕구는 사람마다 다르며, 실제로 그 분노와 보복 욕구가 경적을 울리는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내 기분을 나쁘게 한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내 직관으로는 경적을 울리는 정도의 보복은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를 윤리적 차원에서 검토하려면 합리적 추론을 사용해야 한다. 다음 대화는 이런 맥락에서 인공 지능에게 운전할 때 경적을 울려야 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이번에 사용한 모델은 Claude Sonnet 3.7(Extended Thinking)이며, 응답 스타일은 ‘간결한’을 선택했다.
나:
운전할 때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적을 울려야 할까요?
AI:
친애하는 시민이여, 경적을 울리는 것이 부당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먼저 '부당한 상황'이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부당함이 동일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경적은 위험을 알리는 도구라고 한다면,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그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지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시장에서 누군가 줄을 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소리를 지르나요, 아니면 침묵하나요?
또한, 경적을 울리는 행위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분노의 표현인지도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분노가 항상 정의로운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나:
경적 소리를 들으면 상대 운전자가 불쾌감을 느끼고, 그런 불쾌감은 그 사람이 나중에 부당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일종의 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경적을 울리는 것에 정의로운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AI:
아, 현명한 질문이군요. 불쾌감이 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모든 벌이 정의로운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을 더 나은 운전자로 만든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또한, 경적 소리를 들은 운전자가 반성하기보다 분노하여 더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나요?
정의로움이 단순히 벌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법정에서 우리는 범죄자를 벌하기만 하나요, 아니면 교육하기도 하나요?
나:
경적 울리는 것과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 모두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경적을 울리는 것은 작위이고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은 부작위이기 때문에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게 정당할까요?
AI:
재미있는 질문이군요. 작위와 부작위의 도덕적 차이를 논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결과가 같을 때 행동하지 않는 것이 행동하는 것보다 항상 더 바람직할까요?
배고픈 사람을 보고 음식을 주지 않는 것과 음식을 빼앗는 것 사이에 도덕적 차이가 있나요? 둘 다 그 사람이 배고프게 됩니다.
또한 운전자로서 우리는 도로 안전에 책임이 없을까요? 위험을 경고하지 않는 것이 경고하는 것보다 더 책임 있는 행동일까요?
결과의 가능성만으로 행동의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의도와 목적은 고려하지 않아도 될까요?
나:
그래서 제 생각에 경적을 울리는 것과 울리지 않는 것 모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면,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는 행위인 경적 울리기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의도가 상대 운전자의 운전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라면요.
AI:
아, 당신은 의도의 선함이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좋은 의도가 항상 행위를 정당화할까요? 어린아이를 훈육하려는 의도로 때린다면, 그 의도의 선함이 행위를 정당화하나요?
또한, 경적 소리가 정말로 상대의 운전 습관을 개선할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나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경적보다 더 효과적이면서도 덜 공격적인 방법으로 상대의 운전 습관을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개선이 우리의 책임일까요? 아니면 각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까요?
나:
좋은 의도가 항상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경적을 울리는 것과 아이를 때리는 것은 명백히 다른 행위이므로 비교 대상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적 소리가 정말로 상대의 운전 습관을 개선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으며, 하나의 가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경적은 왜 있을까요?
AI:
현명한 관찰입니다. 경적이 왜 존재하는지, 그 본래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이 문제의 핵심에 닿아있습니다. 경적은 위험을 알리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부당한 상황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이 그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용일까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을 때, 그것은 여전히 같은 도구일까요?
또한, 사회에서 규칙을 지키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을까요? 불쾌감을 주는 것 외에, 교육이나 모범을 보이는 방법은 어떨까요?
당신이 언급한 대로, 확신할 수 없는 가설에 기초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나:
인간은 이성적 교육으로는 생각보다 달라질 수 없습니다. 특히 운전 습관은 직관과 습관에 크게 의존하므로 직관과 무의식 차원의 대처가 필요합니다. 즉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습관을 단시간에 개선할 정도로 뛰어나지 않으므로 인간의 감정을 활용해 특정 행위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부당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경적을 울린다면 그것은 분노 표현 도구가 아닙니다.
AI:
흥미로운 주장이군요. 인간의 감정을 활용하여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일일까요?
또한, 당신이 '부당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부당하다고 여겨질까요?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행동이 객관적으로 정당할 수 있을까요?
경적이 위험 경고의 목적을 넘어 타인의 행동 교정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도로의 안전을 증진시킬까요,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원인이 될까요?
당신이 말한 '부당한 상황'의 경중에 따라 대응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나:
그렇습니다. 부당한 상황의 경중에 따라 경적을 울리는 방식과 길이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당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합리적일 때 경적을 울리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AI:
합리적 판단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운전 중 순간적 상황에서 우리가 항상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분노나 조급함이 판단을 흐리지는 않을까요?
경적의 길이와 방식을 조절한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섬세한 의사소통이 도로에서 가능할까요? 짧은 경적과 긴 경적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구분될까요?
또한, 부당한 상황이 당신에게는 명백해도, 상대방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광장에서 한 사람의 정의가 다른 사람의 부정의가 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나:
운전 중 순간적 상황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리려면 사전에 부당한 상황의 목록을 만들면 됩니다. 예를 들어 ‘옆 차로의 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내 앞으로 들어와 급브레이크를 밟은 경우 울려라'라는 규칙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경적과 긴 경적인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주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특히 1초 이하로 울리는 경적과 3초 이상 울리는 경적의 차이는 명백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부당한 상황 목록’을 사회적으로 합의하여 작성함으로써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습니다.
AI:
아, 규칙을 만들어 부당한 상황을 객관화하려는 시도가 흥미롭군요. 하지만 도로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미리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 규칙들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경적의 길이로 의미를 구분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런데 분노한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그 길이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까요? 감정이 고조된 순간에도 여전히 그 규칙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회적 합의라는 개념은 이상적이지만, 아테네의 모든 시민이 같은 법에 동의하지 않듯이, 모든 운전자가 같은 규칙에 동의할까요? 합의된 규칙이 있어도 개인의 해석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나:
개인의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운전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해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이므로, 감안은 할 정도의 전제 조건으로 취급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도록 합의하고, 분노한 상태에서 경적의 길이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훈련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운전 면허증 시험에서 경적 대응 습관 자체를 평가 기준으로 도입할 수 있습니다.
AI:
훈련을 통한 해결책을 제안하시니 아테네의 교육자들도 기뻐할 만하군요. 그런데 묻겠습니다. 훈련만으로 감정적 반응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까요? 분노의 순간에도 이성이 항상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기로 합의한다면, 그것이 위험한 상황에서 경적의 본래 목적을 저해하지는 않을까요?
또한, 경적을 통한 의사소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개인의 감정 표현인가요, 사회적 질서 유지인가요, 아니면 단순히 안전 확보인가요?
나:
경적을 통한 의사소통의 목적이 하나에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경적이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운전 상황이 아닌 대화 상황에서도 분노의 표현은 정당화됩니다. 부당한 상황에 저항할 권리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AI:
분노의 표현이 정당화된다는 말씀은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그 정당화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분노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면, 그것이 타인의 평화를 누릴 권리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한, 아테네의 현자들은 분노를 통제하는 것이 덕이라 가르쳤습니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과 통제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우리를 더 좋은 시민으로 만들까요?
그리고 모든 부당한 상황에 분노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이성적 대화나 침묵이 더 효과적인 상황은 없을까요?
나:
타인이 나의 평화를 이미 침해했다면 응분의 대응을 각오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감정을 무작정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정한 수준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익히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중용이 무엇인지 알아도 덕 있는 사람이 되려면 중용에 해당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여 습관화해야 하지 않습니까?
AI:
아, 현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떠올리시는군요. 그런데 묻겠습니다. 중용을 실천하기 위해 분노를 표현해야 한다면, 그 분노의 '적정한 수준'은 무엇일까요? 누가 그 수준을 정하나요?
또한, 타인이 나의 평화를 침해했다고 해서 나도 타인의 평화를 침해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일까요? 그렇다면 정의는 보복에 불과한 것인가요?
그리고 경적을 울리는 습관이 정말 덕을 기르는 습관일까요? 아니면 분노에 굴복하는 습관인가요? 아테네의 시민은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으로 통치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요?
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이성적으로도 정당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감정의 표현은 이성의 통제와 양립 가능합니다.
AI:
네, 때로는 분노의 표현이 이성적으로 정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적을 울리는 행위에서 이성적 정당화와 감정적 충동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도로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경적과 불만을 표현하는 경적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나요? 다른 운전자들이 그 차이를 알아차릴까요?
또한, 모든 감정 표현이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일까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이성적 정당화와 감정적 충동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실시간으로 운전자의 뇌 스캔 영상을 모니터링한다면 구별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런 식의 구별은 어려우니 규칙의 목록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아니면 자동차에 자동으로 경적을 울리게 하는 기능을 도입할 수도 있겠습니다.
AI:
재미있는 제안이군요. 규칙 목록이나 자동 경적 기능은 인간의 판단을 대신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질문하겠습니다. 모든 도로 상황을 규칙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정교한 인공지능도 모든 '부당한 상황'을 식별할 수 있을까요?
또한, 판단의 주체를 기계로 대체한다면, 그것은 운전자의 도덕적 책임을 감소시키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시민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처럼, 운전자도 자신의 경적 사용에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규칙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질까요?
나:
무언가를 선택할 때 그것이 반드시 정의로운 결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AI:
현명한 통찰입니다! 행위의 결과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행동해야 할까요? 의도만으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다른 기준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만약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면, 경적을 울리는 행위는 어떤 원칙에 따라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또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도로에서의 우리 의무는 무엇일까요?
나:
‘선한 목적에 근거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행위하라’라는 원칙에 다라 행위하면 어떨까요? 애초에 미래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판단하기에 최선의 결과를 낼 행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선한 목적을 위해서요.
AI:
현명한 원칙을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선한 목적'과 '최선의 결과'는 누구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것일까요? 내게 선한 목적이 다른 이에게도 선할까요?
경적을 울리는 행위가 때로는 운전자 자신의 감정 해소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으로 선한 목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또한, 같은 선한 목적을 위해 여러 행동이 가능할 때, 경적을 울리는 것이 항상 최선의 행위일까요? 덜 공격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선한 목적과 좋은 결과만으로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한다면, 행위의 방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요?
나:
그렇다면 이렇게 수정하겠습니다. ‘선한 목적에 근거해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라.’ 사실 더 문제는 경적과 상향등, 깜빡이 외에는 운전자 간에 소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AI:
현명한 수정이십니다. 수단의 방식까지 고려하시는군요. 그런데 제한된 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 핵심에 닿아있습니다. 경적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라면, 그것에 많은 의미를 담으려는 시도가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을까요?
또한, 제한된 소통 수단은 우리에게 더 큰 책임을 부여하지 않을까요? 아테네의 시민이 단 한 번의 투표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듯, 경적 하나로 여러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운전자 간 소통 방식의 개선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관습에 안주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
그렇다면 잠정적으로 ‘경적은 신중하게 사용하라’는 원칙을 도입하고, 운전자 간 소통 방식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어떨까요?
AI:
현명한 제안이십니다. 하지만 '신중하게'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테네의 시민마다 '신중함'에 대한 해석이 다르지 않을까요?
또한, 운전자 간 소통 방식의 개선이란 어떤 형태를 취할 수 있을까요? 기술적 해결책을 찾을 것인가요, 아니면 운전 문화 자체를 바꿀 것인가요?
그리고 만약 더 나은 소통 방식이 생긴다면, 경적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경적이 본래의 위험 경고 기능으로 돌아간다면, 부당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요?
나:
부당 행위를 한 자에게 벌점이 부과되는 단속 시스템이 생긴다면 경적을 울릴 필요가 줄어들 것입니다.
AI: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그러한 벌점 시스템이 있다면, 정의가 우리 손에서 체계로 옮겨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누가 '부당 행위'를 정의하게 될까요?
또한, 모든 행동이 감시되는 세상에서 우리의 자유는 어떻게 될까요? 아테네의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덕을 실천하듯, 운전자도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기회를 잃지 않을까요?
그리고 벌점 시스템은 행위 이후의 처벌이지만, 경적은 즉각적인 경고입니다. 두 가지의 역할이 같을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질까요?
나:
하지만 리스크의 측면에서 볼 때 시스템에 의한 행위 이후의 처벌이 다른 시민에 의한 경고에 비해 갈등을 적게 유발할 것 같습니다.
AI:
아, 위험을 줄이려는 의도는 칭찬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무엇을 잃게 될까요? 시민 간의 직접적 소통이 줄어든다면, 우리 사회의 유대감은 어떻게 될까요?
또한, 모든 부당한 상황이 시스템에 의해 감지될 수 있을까요? 시스템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위험은 없을까요?
그리고 시민이 서로를 교정하는 권한을 포기하고 시스템에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의 시민으로서의 책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테네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아니었나요?
나:
애초에 운전 상황에서는 직접적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운전 중 부당 상황에 한정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이 서로를 교정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시스템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AI:
아, 중요한 지적이십니다. 운전 상황은 그 특수성이 있군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제한된 소통 수단 속에서 경적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위험 경고만의 용도로 남겨두는 것이 더 명확할까요?
또한, 시스템이 감지하지 못하는 부당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부당함을 단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경적을 울리는 행위가 정말로 부당함을 교정하는 데 효과적일까요? 아니면 단지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에 불과할까요?
나:
처음부터 모든 부당함을 교정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고, 점차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생긴다면 경적은 위험 경고만의 용도로 남겨두는 편이 좋겠네요.
AI: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러한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도기에 경적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또한, '위험'과 '부당함'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누군가 내 차선을 침범하는 것은 위험인가요, 부당함인가요?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추어졌을 때 우리는 경적의 용도를 제한해야 할까요? 누가 그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요?
나:
시스템이 단속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위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 차선을 침범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위험일 수도 있고 부당함일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의 수준이 정교화되어 많은 운전자들이 단속받는 경험을 한다면 경적의 사용은 점진적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AI:
아, 흥미로운 구분이군요. 위험과 부당함을 구별하려 하시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시스템이 중재자가 될 때, 운전자의 판단력은 어떻게 될까요? 모든 상황을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어떻게 될까요?
또한, 경적 사용이 줄어든다면 우리는 위험 상황에서도 경적을 덜 사용하게 될 위험은 없을까요? 습관이란 쉽게 형성되지만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리고 시스템이 정교화된다 해도 모든 부당함을 단속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부당함이 생겨날까요?
나:
모든 부당함을 단속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부당함과 위험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부당함의 단속이 시행되면 위험 상황에서 경적을 덜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AI:
현명한 관점입니다. 시스템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할 때 생기는 문제는 없을까요? 운전자가 자신의 판단보다 시스템을 더 신뢰하게 된다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어떻게 될까요?
또한, 시스템이 단속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부당함은 어떻게 될까요? 아테네의 법이 모든 부정의를 방지하지 못했듯, 우리의 시스템도 완벽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결국, 경적의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안전인가요, 정의인가요, 아니면 소통인가요? 이 세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나:
저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운전할 때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면 경적을 울려야 할까요?’라는 저의 첫 번째 질문에 답해 주세요.
AI: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신의 견해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경적의 본질적 목적은 안전을 확보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초기 질문에 답하자면, 부당한 상황에서 경적을 울려야 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합니다. 만약 그 부당함이 안전을 위협한다면, 경적을 울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분노 표현이나 보복의 수단이라면, 그것은 도로의 안전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경적 사용은 신중해야 하며, 가능하다면 더 나은 운전자 간 소통 시스템이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때까지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
그러면 일단 ‘경적 사용은 신중히 하되 필요하다면 사용하고, 나아가 더 나은 운전자 간 소통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대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I: 현명한 결론에 도달하셨습니다. 신중함과 필요성, 그리고 미래 발전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신 균형 잡힌 시각이군요.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경적의 본질, 분노와 이성의 관계, 운전자 간 소통의 한계, 그리고 안전과 정의의 균형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귀하의 태도는 참으로 철학적입니다. 저 역시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만족할 만큼 대화하진 못했는데, 사용량 제한 때문에 대화를 조금 급하게 마쳤다. 경적을 사용하긴 하되 신중한 태도를 지녀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더 나은 운전자 간 소통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1편에서 사용한 Gemini와 달리 Claude는 조금 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거의 같은 프롬프트를 사용했는데 대답 경향이 달라 흥미로웠다. 내가 원한 것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므로 프롬프트를 Gemini가 더 정확히 이해했다고 본다. ChatGPT는 같은 프롬프트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 보복으로서 경적을 울리는 것 자체는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 자기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분노를 표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부수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것이 ‘경고’나 ‘교육’의 효과를 내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래도 당연히 경적을 무분별하게 울리는 것은 타인에게 부당한 해를 끼치는 일이므로 도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 대화를 발전시켜 ‘분노의 표현’이 어디까지 허용 가능한지 AI와 대화해 봐도 좋겠다.